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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사의 정원은 확대되어야 하는가? (feat. 의사 정원 확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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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사회가 시끄럽다. 정부도 다소 극단적인 측면이 있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의사들을 비판하는 쪽이 큰 것 같다. 기술사 또한 (국민들의 큰 관심은 못 받고 있지만) 정원 확대에 관해 한두 차례 진통이 있어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고찰을 많이 하던 문제라 포스팅을 해본다.

 

 

우선, 기술사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기술사는 개별 자격별로 정원을 논할 수 밖에 없다.

기술사라면 응당 법적으로 가지게 되는 권한은 상당히 약하다. 기술사 없이 기술사라는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고 기술사무소를 차릴 수 없다는 정도이다. 일부 설계서의 결재를 기술사가 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건설, 안전 등 특정 업권에 한한 이야기이다. 그 외의 경우엔 사실 우리가 기술사무소를 차릴 일은 없기에 사실 법적으론 보장 장치가 거의 없는 것이다.

 

정보관리기술사나 컴퓨터시스템응용기술사의 경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가치는 그저 해당 분야에서 상위 1%를 인정 받았다는 정성적 가치일 것이다.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자문, 평가, 자격증, 5급 공무원 등의 혜택이 있지만 이 또한 국가에서 인정하는 최고 등급의 자격을 가졌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지 어떤 법에 의해 보호받는 권한이나 지위는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정보, 컴퓨터 분야의 기술사들이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도장값이 없음에도 전문성 강화, 사회적 인정 등의 정성적인 가치를 위해 인생의 수년을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업계가 정말 전문성에 따라서 가치를 부여받는 전문적인 업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자격에 부여되는 도장값을 위해 자격을 취득하는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의사, 변호사와 같이 도장값이 확실한 일부 기술사들을 제외하고, 도장값이 없거나 미약한 기술사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특히 내가 속한 정보처리분야 기술사(정보관리, 컴퓨터시스템응용)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야기를 풀기에 앞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에 빗대어 본다면 본질을 이해하기가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족이 길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양해를 부탁드린다.

 

자격이 가지는 배타적 권한 있는 경우, 정원은 사회적 합의와 국가 정책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많은 전문직들이 배타적 권한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고 생업을 영위한다. 이 경우 자격이 가지는 권한에 비해 그 수가 너무 모자라면 많은 수요를 소수가 독점하는 상황이 생기므로 그 가치와 영향력이 독보적으로 올라간다. 이런 경우엔 그 수요에 맞게 인원이 조정 되고, 그러한 인원은 국민들의 요구, 산업계의 요구,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 따라 조정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해당 자격으로 생업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그 자격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져 생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힘든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진다면 그들의 입장에선 박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자격 제도를 만든 본래의 취지가 있을 터인데, 자격의 가치가 떨어짐으로 인해 그 자격 취득자들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들의 질은 하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건 균형이다.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계속 방치하다 그 균형이 깨지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이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된다. 특정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는 자격이 본인들의 독점력과 영향력, 그리고 수입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끝까지 인원을 늘리지 않으려고 버티다간 그 균형이 깨져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이는 의사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권한을 가진 모든 자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 적정선이 어딘지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있어야 하고, 논란이 생기기 전부터 많은 논의와 소통을 해야 한다.

 

이 균형은 그 자격이 하는 업무가 얼마나 전문성을 요하는지,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어느정도의 수가 필요한지에 따라 사회적으로 합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사와 같은 직종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만큼 전문성이 높아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 협회의 말처럼 당신은 전교 1등에게 진료를 받고 싶냐 반에서 20등에게 진료를 받고 싶냐 묻는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일단은 진료를 받고 싶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자격을 가진 사람의 전문성 보다도 절대적인 부족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중요한 직업인 건 맞지만 꼭 전교 1등만 할 수 있는 일일까? 가령 전교 10등은 사람을 치료할 자격이 없는가? 유명 대학교의 공대가 의대들 보다 훨씬 경쟁률이 치열한 다른 선진국들은 잘못된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컴퓨터 학과가 왠만한 다른 학과보다 규모가 몇배가 될 정도로 커진 상황이고, 그럼에도 컴퓨터과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률이 그 어느 학과보다 높을 정도로 인기이다. 이는 기술 기반의 혁명이 가속화되고 있고, 인공지능 등의 4차산업혁명 기술들의 가치와 전망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이를 쫓아 가는 것이다.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에서도, 국가적으로도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의대 열풍에 빠져 인공지능 등의 핵심 기술은 물론이고 지금 우리가 그나마 잘 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도 인력 확보에 힘을 못쓰고 있는 상황이다. 균형의 붕괴가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단계까지도 온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문제가 단순히 정원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정도의 상황이라면 급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전문직들의 파업은 정당한가?

모든 전문직들은 '정원'에 관한 민감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기술사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정원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반발하지 않을 전문직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독점적인 권한을 바탕으로 생업을 영위하고, 특정 산업 내에서 정해진 파이를 나눠먹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직 특성상 한번 자격을 취득하면 남들이 한참 전에 은퇴한 나이까지도 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특징이 있기에, 의사처럼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 속에서의 경쟁은 의외로 치열하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많은 변호사, 세무사, 감정평가사들은 끈임 없이 자기 영역을 찾아가고 누구보다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다.

 

어떤 전문직이든 정원을 늘린다고 하면 "우리 밥그릇"이라는 말 보다는 "국민들의 OO 보장"이라는 명분을 세울 것이다. 그 명분이 틀린 말들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는 분명히 있다. 당장 OO사를 20% 늘린다면? 이라는 주제가 떨어진다면 어떤 전문직에 관한 이야기이든 반대의견, 찬성의견이 각각 수백개씩 나올 수 있다. 그것이 전문직의 본질이다. 사실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니 정답이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그 중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사자 집단이 일관되게 "무조건 반대", "인원 늘리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고 다른 방법으로" 라는 확실한 노선을 간다면 것은 결국 "밥그릇"에 관한 문제가 배제되진 않았다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대부분의 파업은 대체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여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파업에 대해 대부분 지지 입장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느냐의 문제를 우리는 "여론"이라고 부른다. 말했다시피, 전문직 정원 조정은 국민과 산업계의 요구, 정부의 정책, 사회적 합의 등에 따라 이루어진다. 결국 어느쪽이 더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선동과 힘싸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론을 무조건 무지와 선동의 결과라고 봐버리는 것은 결국 특권의식, 선민의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에서도 나름의 논리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대를 하는 입장에서도 "이러다 다 죽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사실 이번 사안의 경우 그 둘의 논리가 모두 아쉽다는게 내 개인적인 입장이다. 정부는 엉뚱한 논문을 논문을 들이밀면서 너무 불도저식으로만 밀어 붙인다. 그래서 선거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반대쪽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내가 이길걸?" 이라는 식으로 싸워보자고 하는 느낌이다. 어느 한쪽의 논리가 부족하니 반대쪽도 논리 싸움보단 힘싸움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요즘 정치가 전반적으로 이렇게 흘러가고 있어서 너무 아쉽다. 공개 토론회라도 많이 이루어진다면 국민들이 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좋을텐데, 지금은 그 어느쪽도 여론을 신경쓰지 않는다.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선 근거와 논리가 필수적이다. 이들은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지만 쉽게 반박이 가능한 어설픈 논리인데, 반박은 듣지 않고 같은 말만 반복한다면 당연히 지지는 받을 수 없다.

 

이번 파업(정확히는 파업은 아니고 집단 행동이다)이 정당한지 여부는,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정보를 기반으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여태 우리가 봐왔던 다른 노동자들의 파업과는 다르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느낄 것이다.

 

그래서 기술사의 정원은 늘어나야 하는가?

이 이야기를 하려다가 사족이 길었다. 사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에서 어느정도 답은 나왔다. 어떤 업역에서 배타적으로 역할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인원 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러한 역할이 없다면 굳이 인원 조정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한 자연스럽게는 나올 수 없다. 현재 기술사 제도는 어찌 보면 방치되고 있는 제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무부터 입장에선 만들어진 제도이니 잘 운영은 해야겠지만, 이 제도를 아주 가치있게 활성화하기엔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 겨우 현상 유지만을 하려는 것 같다. 그나마 쉽게 꺼내볼 수 있는 아이디어로 인원을 대폭 확대하여 덩치를 키운 후, 그 덩치에 걸맞는 일을 찾아보자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존 기술사 입장에선 덩치를 키우는 건 최소한 역할을 논하고, 그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 입장이다.

 

일부 도장값이 확실한 기술사들은 잠시 논외로 하면, 대부분의 다른 기술사들은 그저 나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정성적인 가치에 기대어 기술사를 취득하였다. 물론 회사 승진이나 부수입 등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최소한 기술사로 밥 먹고 살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밥그릇"이 턱없이 부족한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수를 늘려서 기술사는 그저 그런 사람들도 딸 수 있는 자격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마 대부분 수용을 할 수 없지 않을까? 의사들이 말하는 전교 1등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고 반에서 20등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와는 다르다. 애초에 "사람 치료"와 같은 역할을 배제한 상태에서 "최우등생"이라는 타이틀만을 위해 노력했는데 "최우등생" 타이틀의 기준을 전교 1%에서 전교 10%로 확대하겠다고 하는 상황에 더 맞을 것이다. 그러려면 명분과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게 그게 없다. 그저 소수를 다수로 만들어 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이지 않겠냐는 입장 뿐이다.

 

나는 정보처리분야 기술사의 정원 확대를 적극 찬성한다. 다만 그만한 역할을 주어준 상태에서의 확대를 찬성하는 것이다. 비유를 이어나가보자면 최우등생은 최우등생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반장 선거에서도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 학생회에 들어가기도 수월했다. 그리고 학생을 대변하여 학교에 이런저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정성적인 자격이 생겼다. 하지만 "최우등생"만이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배타적인 권한은 전혀 없다. 그냥 최우등생이 상위 1%를 보장하는 타이틀이므로, 주변 사람들이 그 타이틀을 인정해줬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타이틀을 격하시킬 이유가 있을까? 최우등생들이 딱히 그 타이틀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니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는 그저 최우등생을 찾는 수요를 줄이는 효과밖엔 없다.

 

이런 상상은 가능하다. 학교 선도부가 공부는 잘 못하지만 싸움 잘하는 친구들 위주로만  구성되고 있으니,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 선도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구분하는 "최우등생"이라는 기준이 이미 있으니 이를 활용하되, 전교 1% 내에서 선도부를 뽑기는 너무 극소수라 어려우니 전교 5%로 늘리자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역할 부여"과 "확대"를 동시에 하는 예시이다.

 

만약 여기서 "선도부"가 되는 것이 매리트가 없다면 최우등생은 이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냥 "최우등생"의 타이틀은 그대로 두고, 선도부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학업성적 전교 5% 이내"로 규정하라고 할 것이다. 만약 여기서 학교가 "최우등생"의 타이틀을 활용하고 싶다면 "최우등생"들과의 협의를 통해 "선도부"뿐만 아니라 "학생회"참여를 "최우등생"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5%가 아닌 10%로 늘리자고 2안을 제시해볼 수도 있다. 이것이 협조, 합의의 과정이다. 이런 내용들은 정책적 당위성과 사회적 공감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선도부나 학생회를 하는 것이 학교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라는 인식 말이다. 그래야 "선도부", "학생회", "최우등생", 나아가서는 학생들이나 학부모, 선생님들도 모두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의사, 변호사 등 대부분의 전문직들이 그런 인식에 따라서 극소수의 인원에게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만약 기술사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이 있다면, 그에 맞추어서 인원을 늘리는 협의는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논의는 우리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정보처리분야 기술사가 배타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 특히 정보기술 분야는 워낙 발전이 빠르고, 일들이 기민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어떤 자격에게 배타적인 권한을 주기가 곤란한 건 사실이다. 누군가 법에서 주어진 독점적인 권한을 갖는다면, 관련된 모든 일들이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소수의 인원을 거쳐 처리되어야 하는 만큼 일을 추진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건물 설계서는 기술사의 승인을 받더라도 아키텍처 정의서나 네트워크 구성도는 기술사의 승인을 받지 않는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로 유연한 설계를 하는 추세에 설계서를 어느 순간 승인을 받고 프리징 해야한다면 그건 시스템의 효율적인 구축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는 산업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많은 B2C분야에선 유연함이 필수적이라면 공공시스템, 금융시스템과 같이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는 구축이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일이 너무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금융분야는 핀테크와 같이 변화가 매우 빠른 영역도 있어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영역은 계정계와 같은 코어 영역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안전과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는 시스템은 사실 전반적인 측면에서 안정성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있었던 여러 행정시스템 마비와 같은 사건사고들은 사실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절차적・설계적 실수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많은 피해를 가져왔던 개인정보 유출, 해킹 등 수많은 보안 사고도 마찬가지다. 

 

건축 분야도 모든 건축설계 전반에 기술사가 개입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안전과 관련된 분야에 한정이 되어 있다. 정보처리분야의 기술사 또한 마찬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IT 사업엔 이를 감당할 수 있을만한 전문인력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특히 많은 공개 입찰 공공사업의 제안서 내용은 너무 획일적으로 템플릿화되어 있고, 기술평가는 형식적이고(배점이 매우 작은 경우가 많다), 가격경쟁을 통해서 업체가 사업자가 선정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막상 선정을 하고 나면 해당 업체의 역량이 매우 약하여 겨우 기능만 억지로 동작하도록 구성되고 안정성이나 보안성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이 역할을 보완하기 위해 PMO나 정보시스템감리 역할이 있긴 하지만, 업체의 근본적인 실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있었던 행정시스템 사고에 따라 정부는 공공 시스템 구축에 대한 대기업 참여 제한을 풀어버리겠다고 하였다. 시스템의 안정적인 구축을 위해선 우수한 기업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는 틀린 생각이 아니지만 본래 대기업 참여 제한이 걸려 있었던 그 입법 취지를 생각해보았어야 했을텐데 참 아쉽다. 애초에 중소기업를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를 단순히 롤백해버리기 보단 참여 인력 강화 등의 보완책을 통해 그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것도 가능했을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엔 기술사가 필수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다.

 

사실 기술사에게 세상이 개방되어 가는 상황에서 어떤 특정 집단에게 독점적인 권한을 주는 일은, 이제는 입안자 입장에서도 다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IT 산업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 특정 자격이 적절하게 활용되는 것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특히 기술사가 고유하게 가질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선 여러가지가 떠오르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므로 별도 포스팅을 통해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결어

세상이 너무 극단적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이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러하고, 이런 부분들이 이겐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영향을 주는 느낌이다. 너무 양쪽으로 치닫는 싸움판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특정 사안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쳐버려,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에는 어떤 대화를 하기가 겁날 정도이다. 사회적 사안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를 나누는 우리의 보통 문화가 이젠 사라지고 있다. 마치 80년대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처럼, 그냥 잘 지내려면 아예 민감할수도 있는 얘기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민감할수도 있는 문제의 범주가 인종, 성별, 정치 뿐만 아니라 직업, 경제 등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 같다.

 

의사들이 늘어나면 좋을까? 라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흔한 주제이다. 장기간에 걸쳐 논의를 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결과를 예상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물어보는 사회적 협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여러가지 어른들의 사정으로 아무 이야기도 못하다가 어느 순간, 일부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려는 요량인듯 터뜨려져 버린 것이다. 이런 사안이 논의되는 과정도 양 극단에서 전혀 중간점을 찾지 못하고 반대편을 크게 비난하고 있기만 하다. 보편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게 마치 정쟁과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치에서도차 예전엔 토론을 잘 하고 바람직한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사람이 인기가 좋았다면 이제는 그냥 상대방 비난을 촌철살인을 잘 하는, 입이 매운 사람이 인기가 좋아지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의사와 정부의 싸움도 그런 분위기로 진행이 되는 것 같아서 매우 아쉽다. 좋은 주제를 성숙한 자세로 논의하면 이런 어려운 사안을 헤쳐나가는 사회적 의식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텐데 말이다. 

 

이번 글에는 내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진 않았다. 나도 사안별로 내 의견들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어떤식으로 바람직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각자의 몫이다. 다른 이런 본인의 몫을 각자 성실하게 해주고, 더 나아가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출해주길 바란다. 부디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좋은 방향으로 논의되고 좋은 과정을 거쳐 좋은 결과로 귀결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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